혁신의지 꺾는 하수처리장 입찰제 유감
- 현행 입찰제도, 수질개선 및 운영비 저감기술은 뒷전으로
- 시설비와 운영비 아우르는 ‘생애주기비용’ 제도 전환 절실
다음은 김동우 부강테크(BKT) 설립자가 현행 입찰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정리한 매일경제(3월 20일자 게재) 기고 전문이다.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시끄럽다. 수년 전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은 무엇이 인류 생명증진에 가장 큰 공헌을 했는지 조사했다. 백신과 항생제를 제치고 하수처리가 1위를 차지했다.
인류 생명증진에 기여하고 한 번 건설하면 100년 이상 쓰는 하수처리장, 무엇이 중요할까? 최근IoT, Big data, AI 기술로 안정적 수질과 낮은 운영비를 실현하고 “지속 가능성”을 확대하는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 요지부동인 정부의 하수처리장 입찰제도는 세상의 변화를 담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이라 유감이다.
첫 번째 유감은 기술 선정기준과 관련이 있다. 하수처리기술은 수질과 가격을 함께 감안하여 채택되지만 통상 시설비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술들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제안됨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시설비가 강조되다 보니 안정적 수질확보나 운영비 저감기술들은 뒷전이다. 문제는 하수처리장 주기능을 달성하는 기술들을 경쟁시켜 절감한 예산이 본질과 다른 곳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국고 환수 대신 조경 등 하수처리장 치장에 전용되거나 턴키 사업의 경우 대기업 몫이 된다. 이런 시설비 위주 선정방식은 구태의연하고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혁신의지를 꺾는다. 막대한 연구예산 투입과 핑크 빛 물 산업 전망보다 기본적인 제도 정비를 선행해 보는 게 어떨까?
두 번째는 운영비에 관한 것이다. 30년 기준 하수처리장 운영비는 통상 시설비의 1.5~2배에 달한다. 하지만 현행 입찰제도에서 비용 부담의 주체인 지방정부조차 운영비에 대한 관심이 낮다. 시설비 100억 원, 30년간 운영비 200억 원인 기술(A)과 시설비 150억 원, 운영비 100억 원인 기술(B)이 있다. 국비가 최대 80%까지 지원되는 시설비는 더 내더라도 100% 부담하는 운영비는 최소화하는 것이 시민 세금부담 등을 고려할 때 지방정부의 옳은 선택이다. 그런데 합리적이라면 당연히 채택될 B 대신 많은 경우 A가 선택되고 예산절감 사례로 홍보까지 된다. 턴키 제도 폐해는 더 심각하다. 가격점수와 설계점수를 합해 낙찰자가 선정되는데 시설비만 가격점수에 포함되고 운영비는 설계점수 일부로 간접 평가돼 영향력이 미미하다. 특히 단독입찰로 수의 계약된 턴키 사업은 운영비가 비싸도 시설비가 싼 기술을 채택해 건설사 배만 불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입찰제도 모순은 하수처리장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고 지방재정 악화를 가져와 지방분권화 정책에 역행한다. 또한 기술개발은 등한시하고 외국기술 도입 등으로 손쉽게 돈을 벌어 온 건설사들의 무임 승차를 용인해 경제정의 실현에도 반한다.
대안으로 시설비와 운영비를 아우르는 ‘생애주기비용’(LCC: Life Cycle Cost) 제도를 제안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기본 모델로 쓰고 있고 우리나라도 일부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형식적 적용과 조작을 막기 위해 국공채 수익률 기준 이자비용 적용, 전력비나 약품비의 단가 제시 등 구체적 산정방식을 정해야 한다. 발전 산업은 이미 생애주기비용을 따져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환경부가 최근 물 산업 진흥법을 만드는 등 다양한 혁신 의지를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중소환경기업은 불합리한 입찰제도에 막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올해 물의 날이 미래 세대를 위한 정부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환경부의 현명한 정책 전환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