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인터넷 자본금 공모(1999)
패기만만한 1년차 신생기업에게도 IMF 외환위기는 혹독했다. 모든 경제활동이 움츠러들면서 기업들은 투자를 축소하며 몸 사리기에 급급했고 구조조정의 여파로 나날이 실업자가 늘어나는 판국이었다.
당시 우리는 전국을 발로 뛰며 노력한 끝에 김해와 포천의 가축분뇨 공공처리시설을 수주한 상태였다. 그러나 수주가 매출로 이어지기까지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소요되는 환경업계 특성상 경쟁력 있는 기술개발을 위한 자금이 절실한 시기였다. 1999년 우리는 인터넷 공모를 통해 첫 funding을 진행했다. 회사가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직접 청약을 받는 약 1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1년 우리는 투자자들에게 10배의 수익을 되돌려주며 은혜를 톡톡히 갚았다.
코스닥 상장(2001)
인터넷 공모를 통한 유상증자로 1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한 우리는 2001년 5월 코스닥 상장을 성사시키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환경비전 21’은 국내 최초로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환경기업, 제3시장에서 코스닥에 직 등록한 첫 번째 케이스, 창업 후 최단기간 코스닥 상장 등 숱한 화제와 기록을 남겼다.
환경비전 21이 투명한 경영을 바탕으로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는 유망 환경기업이라는 점은 코스닥 시장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코스닥 등록 이후 무려 13번 연속으로 상한가를 기록하고 5백만 달러의 해외자금을 유치하는 등 IT가 주류인 코스닥 시장에서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 공모와 코스닥 상장 성공으로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실제로 이때 모인 자금은 우리의 주력기술인 FMX와 BBF를 개발하고 회사 성장의 기틀을 다지는 데 Seed Money로 활용되었다.
잘못된 선택, M&A(2003)
2003년 12월 우리는 자동차사업 기반의 한국시트로부터 M&A 제안을 받았다. 한국시트는 환경비전 21을 통해 우회상장을 하고 환경비전 21은 한국시트의 환경사업부로 독립해 환경사업을 더욱 본격화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선배는 탄탄하고 안정된 기반 위에서 기술개발에 더욱 매진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하에 제안을 수용했다.
환경비전 21을 인수한 한국시트는 KNT로 이름을 바꾸고 당초 인수 조건이었던 환경사업부의 분리를 차일피일 미루며 150억 원의 증자를 단행했다. 2005년 3월 김선배는 감사 보고서를 작성하던 회계사로부터 이상한 징후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소위 150억 원의 위장 증자 후 그 돈이 전부 통장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김선배는 그때서야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 지 깨닫고 망연자실했다. 2005년 4월 KNT는 부도 처리됐다. 월급 한 번 밀려 본 적 없던 환경비전 21은 작전세력에 휘말려 그렇게 끝이 났다.
부강테크 탄생(2005)
회계사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전국을 돌면서 온갖 악취를 뒤집어쓰며 일궈온 회사였다. 사회에 기여하는 명분 있는 사업을 해보겠다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다. 그러나 김선배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여전히 업계 최고의 기술력과 열정 있는 인재들이 남아 있었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김선배는 직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한 번 나를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회사가 지금 당장은 여러분에게 보장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10평짜리 오피스텔에서 시작했던 그 때보다 지금 우리는 몇 배 더 많은 기술과 시장, 그리고 여러분이라는 인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교훈 삼아 다시 뛰겠습니다. 다시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직원들은 김선배의 노력과 헌신을 잘 알고 있기에 말없이 격려해 주었다. 누구도 김선배를 비난하거나 회사를 등지는 사람이 없었다. 2005년 7월 8일, 김선배는 자신을 믿고 시련을 함께 헤쳐 가기로 한 직원들과 회사 지분을 나누고 ‘부강테크’라는 새 이름으로 새 출발을 선언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있는 말이었다. 우리는 우수한 기술과 실력을 인정받는 정직한 기업을 추구해온 부강테크의 미래를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시련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
친환경인증시장 도전(2005)
2005년 5월 부강테크는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 7호 인증기관으로 지정되며 영리법인 최초로 친환경 인증사업에 진출했다. 가축분뇨를 처리하며 비료를 생산하는 솔루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친환경 농산물, 축산물 및 임산물을 인증하는 사업을 통해 자원의 선순환 구조를 실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당시 친환경인증 시장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격전지였다. 국내 인증이 주업인 인증기관들은 타 기관의 인증 갱신기간에 맞춰 가격 인하라는 미끼로 타 업체 고객에게 접근하는 가로채기 영업을 펼쳤고 그것은 부강테크의 인증을 받아온 고객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자재를 쓰면 인증이 가능하다는 거짓정보로 농가를 모집하고 인증기관에는 수수료를 요구하는 중간영업을 펼치는 자재상들까지 가세한 친환경인증 시장은 생각처럼 맑지 않은 시장이었다.
부강테크의 친환경인증사업 진출은 가축분뇨의 선순환 실현을 위한 로드맵의 일부였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영리 추구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인증, 철저한 사후관리 및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친환경이라는 꿈을 고객과 함께 실현하는 것이었다. 부강테크는 지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며 자원의 선순환 실현을 위한 도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정 일호 회장 취임(2006)
2006년 4월 김 선배는 정일호 회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김선배는 부도가 난 회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정회장 스카우트에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1999년 한국환경벤처협회 설립을 함께 주도하며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코스닥 광풍시대를 함께 겪으며 업계 경쟁자에서 동반자 관계로 바뀌었다. 당시 정회장은 코스닥 광풍에 휘말려 이전투구에만 골몰하던 경영진들의 행태에 환멸을 느끼고 환경업계를 완전히 떠나 있던 상황이었다.
정직한 기술로 환경사업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김선배의 진심은 정회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회장은 부강테크가 보유한 기술력과 인재에서 잠재력을 확인하고 환경업계에 복귀했다. 동병상련의 상처를 간직한 두 사람이 환경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의기투합하는 순간이었다. 김선배의 꿈과 열정, 정회장의 경륜과 현실주의는 부강테크가 종합 환경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너지를 창출하며 현재까지 찰떡궁합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가축분뇨 통합솔루션 완성(2007)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격언이 있듯이 폐수처리에서 새로운 기술이란 없다. 기존에 개발된 기술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어떻게 조합해서 새로운 컨셉의 솔루션을 만들어내느냐가 업계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초기 BCS는 검증되지 않은 주처리 공법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의 BCS는 전처리부터 주처리, 고도처리까지 전체 공정시스템으로 진화했다.
부강은 BCS 공법을 가축분뇨처리를 위한 확실한 기술대안으로 인식시키며 고도처리기술, 액체비료 생산기술 등 다양한 요소기술들을 개발하고 국내 최초로 가축분뇨의 정화처리와 자원화 신기술까지 획득하며 가축분뇨 통합 솔루션을 완성했다.
엄밀히 말하면 시장에는 BCS와 같은 기술력을 보유한 경쟁사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부강이 가축분뇨 처리시장에서 현재의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할 수 있었던 근간은 바로 부강만의 독자적인 솔루션에 있다. 해마다 수익의 10%를 R&D에 투자하며 기술 개발에 집중해온 덕분이다. 어느 한 곳도 녹록치 않았던 여러 현장에서 수많은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극복하며 경험자산으로 녹여낸 부강의 역사가 바로 부강의 솔루션이 되었다. 이는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부강의 핵심역량이며 우리가 꿈꾸는 내일의 바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