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업 포트폴리오 태동
환경비전 21 설립(1998.6.1)
1990년대 후반, 21세기 신 성장동력 중 하나로 환경산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계 환경산업은1996년 약 5,000억 달러 규모로 90% 이상이 선진국에 편중되었고 미국은 40%에 이르는 가장 큰 시장규모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 산업은 석유산업을 능가할 ‘블루 다이아몬드’ 시장으로 전망되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물 관련 기업의 수는 약 70여개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환경산업은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제조업부터 토목, 기계, 화학, 전기 등 다양한 산업분야의 고급 응용기술이 총 망라된 ‘종합세트’인 만큼 기술의 파급효과가 막대하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타 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환경산업을 육성하고 있었다. 국내 역시 환경산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기업들의 관심과 참여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 투자가 많이 필요한 반면 즉각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사업성이 열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게다가 1998년은 IMF 외환 위기로 모든 경제활동이 꽁꽁 얼어붙던 시기였다.
부강테크는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탄생했다. 1990년대 후반, 8년차 공인회계사 김동우는 누가 봐도 기업 M&A 분야에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보다 가치 있고 명분 있는 돈 벌이를 하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이 있었다. ‘제조업 현장에서 땀 흘린 만큼 대가를 받고 결실을 거두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가 공인회계사로서 여러 기업들을 찾아 다니며 품었던 오랜 목표였다. 그리고 그 무렵 그는 IMF 여파로 어려움에 처한 부산의 한 환경기업 한창수기의 컨설팅을 맡았다.
김동우 회계사의 눈에는 유망기술을 보유한 신생기업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장점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처럼 보였다.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이라 신생기업 입장에서도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었고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것이 당시의 환경 산업이었다. 그는 제대로 된 기술을 확보하고 탄탄한 경영전략과 마케팅, 원활한 조직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면 인생을 걸고 도전해 볼 만한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확신이 들었다.
1998년 6월 1일, 창업자 김동우(2012년 직급제도 폐지 이후 ‘김선배’로 호칭, 이하 김선배)는 가족과 친지, 동료들의 반대 속에서 ‘환경비전 21’을 설립했다. 10평 남짓한 서울 동대문의 한 오피스텔에서 5명의 직원과 함께 한 조촐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환경 냄새 풀풀 나는 회사명에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사업을 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환경산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담았다. ‘더 맑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우리 부강인의 20년 도전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축분뇨처리시장 도전
고생을 각오하고 시작한 사업인 만큼 우리에겐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중소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우리는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기보다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영역 확보를 목표로 정했다.
우리가 선택한 첫 번째 도전지는 현재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가축분뇨 공공처리 시장이었다.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진입장벽이 높았다. 하수처리 분야는 상대적으로 기술이 간단한 데다 업체 간 기술 차이가 크지 않아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나 가축분뇨는 달랐다. 언론에서는 연일 식수오염의 주범으로 가축분뇨가 오르내리는 데 반해 처리장의 정상 가동율은 40%를 넘지 못했고 이마저 눈 가리고 아웅하는 현장이 대다수라 검증된 처리기술이 없었다.
고농도인 가축분뇨의 처리는 좁은 국토, 밀집된 농가라는 국내의 특수한 지리적 요건이 더해져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술 R&D가 선행되어야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게다가 틈새시장인 가축분뇨 처리시장은 대기업이 진출하기에는 수익성이 낮고 중소기업은 자금력이 부족해 제대로 가동되는 시설 자체가 전무한 실정이라 기술 개발만 제대로 해낸다면 가축분뇨 공공처리시장이라는 노다지를 손에 쥘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시장을 선점하며 국내 최대 환경오염원도 처리할 수 있는 가축분뇨 처리시장은 돈 벌이를 넘어 제대로 된 환경기업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우리의 사명에도 걸맞은 1석 2조의 시장이었다.
둘째, 가축분뇨의 공공처리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이었다. IMF 초기의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지자체가 건설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대손의 위험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신생기업에게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수주에서 매출까지는 평균 3년에서 5년 정도 걸리는 업계 특성상 단 한 번의 손실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셋째, 환경시장의 잠재력도 우리가 가축분뇨 처리시장을 선택한 기준 중 하나였다. 당시는 환경시장이 형성되는 초기라 시장규모는 미미했지만 소득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환경의식이 점차 높아지는 것도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가축분뇨가 심각한 환경 오염원으로 부각되는 상황과 맞물려 일정 규모가 넘는 법인농가의 자체 처리도 문제가 되면서 결국 공공처리시설에서 처리해야 하는 가축분뇨의 양이 늘어나도록 법이 바뀌어 가는 추세였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가축분뇨 처리시장은 최적의 선택지였고 우리의 선택은 옳았다. 비록 환경분야 중에서도 까다롭고 어려운 가축분뇨 처리시장에 진출하여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지만 우리는 결국 국내 최대 오염원인 ‘가축분뇨 해결사’로 절대적인 위치를 선점했다. 우리에게 가축분뇨의 악취는 곧 ‘수익의 향기’였다.
잊지 못할 첫 수주
우리는 가축분뇨 공공처리시장을 목표로 정하고 전국의 지자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신생기업인 우리의 무기는 오직 의욕 하나뿐이던 시절이었다.
예상대로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전국이 가축분뇨 오염문제로 떠들썩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기술력도 문제였지만 프로젝트 수주 후 방류수질을 맞추지 못해 고의로 부도를 내거나 마무리도 되기 전에 폐업해 버리고 수익만 챙기는 일이 다반사였던 환경업계의 분위기도 커다란 장벽이었다. 제안서 제출에 앞서 2, 3년 먼저 영업을 시작해야 하는 환경업계 특성상 첫 프로젝트 수주는 회사의 존폐를 결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우리는 아침 출근길에 “신발장에서 신발은 꺼내 신고 간과 쓸개는 두고 오라”는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첫 수주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신생 중소기업의 직원이 무작정 찾아간다고 해서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이 만나주는 것도 아니었다. 사전 약속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바람을 맞는 일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낙담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라는 신념과 의욕으로 에너지가 충만했다. 비록 문전 박대를 당하고 담당자가 쳐다보지 않아도 우리는 찾아가고 또 찾아갔다.
그렇게 동분서주하던 어느 날 김해시 담당자로부터 수주전에 참가해보라는 연락이 왔다. 우리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부가 주관하는 프로젝트는 공정한 심사를 거쳐 공법사가 정해지는 만큼 담당자와의 친분이 공사수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프로젝트 제안을 해보라는 한 마디는 큰 힘이 되었다. 공사에 대한 정보와 요구사항을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고 그만큼 수주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김해시 가축분뇨 공공처리시설은 우리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부강의 기술력과 그 동안의 영업활동, 그리고 이를 녹여낸 제안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투자한 모든 것을 시험해볼 첫 기회였다. 기필코 수주하고 싶었고 수주해야만 했다. 우리의 노력은 첫 수주 성공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열정과 열망을 모조리 쏟아 부은 노력의 달콤한 대가였다. 첫 수주가 어렵사리 성사되자 꼬리를 물 듯 새로운 수주가 이어졌다.
요소기술을 개발하라(2000)
신생기업인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기술’이었다. 김해시 가축분뇨 공공처리시설은 당시 우리가 보유한 유일한 공법인 BCS(Bio Ceramic SBR)를 적용해 설계되었다. 그러나 유망기술이라 믿고 한창수기에서 도입한 초기 BCS는 불완전한 데칸타와 제어반을 가진 검증되지 않은 주처리 공법에 불과했다. 자체기술 없이 주처리 공법만을 보유한 우리는 실험기자재는 물론 변변한 연구소 하나 갖추지 못한 상황 속에서 넘치는 의욕만을 무기로 요소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연구팀이 GSD(EV탈기탑) 기술연구에 매달릴 때의 일이다. 알음알음 협력업체 공장 등 실험을 진행할 만한 공간을 빌려 전전하던 어느 날 김포에서 파일럿 실험을 한 뒤 분석 의뢰를 위해 한양대까지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마땅한 연구실도 없는 우리 형편에 업무차량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 하는 수 없이 한 연구원이 샘플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두어 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문제는 실험을 하면서 연구원들의 몸에 베인 악취였다. GSD 장치는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엄청난 양의 가스를 주변으로 분출했다. GSD 장치 옆에서 운전을 하던 연구원들은 가축분뇨전문 엔지니어답게 머리 위로 떨어지는 분무가스를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지만 일반인들에게 분무가스의 악취는 마치 노숙자에게서 풍기는 악취 정도로 느껴졌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밀폐된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수근대기 시작하며 슬슬 우리 연구원을 피하기 시작했고 곧 따가운 시선에 민망해진 연구원은 얼마 가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그러나 갈 길이 아직 멀었던 우리 연구원은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나던 냄새가 지하철이라고 안 날 리는 없는 법. 지하철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우리 연구원은 버스와 지하철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서 한양대로 향했다. 우리 연구원 주변만 한적해진 객차의 모습은 누가 보면 웃음을 터트릴 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가슴 찡한 이야기다.
이렇게 개발된 GSD는 김해시 가축분뇨 처리시설에 첫 적용되어 우리가 수주한 첫 현장의 무사 준공에 기여했다. 2000년에서 2002년 초까지 가축분뇨 처리기술의 주력 아이템이었던 GSD는 아산시 가축분뇨처리시설 납품을 끝으로 생산이 중단됐다. 모든 R&D가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는 없는 법. GSD 기술은 비록 사장되었지만 최고의 기술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우리 연구원들의 열정과 헌신은 이후 부강 혁신기술 개발의 토대가 되었기에 우리 중 누구도 GSD 기술을 실패한 기술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김해, 포천 가축분뇨 공공처리시설 준공(2001)
김해시 가축분뇨 공공처리시설과 뒤이어 수주한 포천의 가축분뇨 공공처리시설은 50억 원에 달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매출을 일으켰다고 자축하기에는 준공까지 가야할 길이 너무 멀었고 넘어야 할 산도 많았다. 기술력이 부족하다 하여 일본에서 데칸타를 수입하고 후단처리 분리막이 필요하다 하여 미국에서 VSEP을 도입하는 등 R&D에만 20여억 원을 투자하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처리과정에서 발생한 농축수도 문제였다. 당장 시설개선에 필요한 예산이 없고 빈영양화 현상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인근 하수처리장으로의 연계처리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연간 억대에 달하는 농축수의 운반비용을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부담해야 했다. 수익이 모두 사후관리 비용으로 들어가는 상황은 신생기업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 요인이었다. 그러나 호언장담으로 수주를 따내고 그 후에는 나 몰라라 하는 당시 환경업계 전반의 분위기를 타파하고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는 깨끗한 사람들로 남겠다는 우리의 꿈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술력 외에 현장 노하우가 전무한 것도 문제였다. 운전 미숙으로 처리장의 수위 조절을 잘못하면 가축분뇨가 넘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중앙통제실에서 밤낮으로 근무를 섰다. 그러던 어느 새벽 결국 사건이 터졌다. 밤 근무를 하던 우리 직원이 깜박 존 사이에 엄청난 양의 오물이 논두렁 옆 하천으로 흘러 넘쳤다. 아침이 되어 주민들이 눈치채고 신고를 한다면 벌금도 벌금이지만 일이 엄청나게 커질 판이었다. 후다닥 잠에서 깬 직원은 가축분뇨 원수인지 슬러지인지 모를 오물을 밤새 퍼 담았다. 그대로 포기하고 싶을 만큼 엄두가 나지 않는 양이었지만 단 두 명의 직원은 밤새도록 현장을 지키며 복구했다. 2001년 김포와 포천의 가축분뇨 공공처리시설은 마침내 무사히 준공되었다. 기술도 경험도 모두 부족했던 초창기,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우리의 첫 현장을 무사히 지켜내겠다는 책임정신은 김해와 포천 현장을 지켜낸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부강테크의 미래를 밝히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는 첫 현장에서 얻은 실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업계 최초로 환경신기술 인증을 획득하고 지자체로부터 표창을 받았다.